언론 탄압, 게지 공원 그리고 쿠르드 문제
지금까지 히즈멧이라 불리는 대중 시민사회운동에 영감을 부여해온 이슬람 학자인 페툴라 귤렌은 터키 사회에 양극화가 점차 만연되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다양성의 존중을 요구했다.
“터키의 여러 영역에서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귤렌은 “모든 사람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대중을 억압하면 사회의 단층면에 마찰이 생긴다. 이는 아주 위험한 것으로 어떤 정당도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지공원 사태중 대규모 시위 대응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관련된 그의 종전 언급을 상기시키면서, 귤렌은 “시위자들은 민주적으로 의견을 나타냈으며 당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위여서, 용인돼야 했다”고 말했다. “대신 시위는 난폭하게 진압되었다”고 개탄했다.
쿠르드 문제에 있어서 기본권과 자유는 흥정 카드로 사용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문제 해결에 정부의 늦은 대응을 비판했다.
이 이슬람 학자는 “쿠르드 국민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터키는 다른 지역에 있는쿠르드인에 도움의 손길을 줘야한다. 이를 통해 그들과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관계를 재설정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앙카라의 대사 회의중 대사들은 “근무지에서 이 조직들의 실상을 잘 얘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터키 대사들이 터키의 해외 학교를 매도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과 같다. 이 점에 대해 언급 바란다.
터키 관료들이 터키의 해외 학교를 저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 가슴은 아팠고 하나님에게 안식을 구했다. 불행히도 이런 파괴 욕구는 여러 면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 학교들은 아나톨리아인의 커다란 자기희생을 통해 설립되었다. 터키인 대부분이 학교들을 보아왔다. 우파 또는 좌파, 신국가주의자, 신앙인 또는 비 신앙인, 정의개발당,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 민족주의행동당, 대통합당, 복지당, 평화민주당 등 모든 계층의 사람이 본 것이다. “이 학교들은 해로워 폐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합리적, 정치적 논거로도 이 학교들의 폐교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이 학교를 설립한 우리의 동료들은 초기에 많은 물질적, 비물질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아나톨리아인의 따뜻하게 포용하는 심성을 이 나라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이와 함께 아나톨리아인의 관용을 함께 전파했다. 이는 우리의 보편적 가치를 전수한 것으로, 우리 문화와 언어를 세계의 여러 곳에 소개하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에 눈을 감는 것은 고마움을 모르는 행위이다. 이런 명백한 진리를 손으로 가릴 수는 없으며, 누가 뭐라던 우리의 현명한 사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학교들은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터키가 국제 무대에서 알려지는데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이 사람들의 앞길을 막는다면, 터키는 글로벌 시기에 국제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외부 세계에서 고립되면 터키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이 시대에서 이런 현실은 터키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터키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터키를 사랑하고 동정하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세계 공동체는 세계평화를 위해 서로를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선활동이 방해되고 외국인의 눈에 오해 받는 현실을 보면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심과 공손함을 보여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 본래의 사명이 우리에 명하는 대로, 우리가 과거에 그래왔고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않으며, 어떤 이의 가슴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람과 좋고 온화한 관계를 지속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베디우즈자만 사이드 누르시의 다음과 같은 말을 따른다. “지난 세월 나에게 고난, 고통, 고문, 시련을 안겨준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 80여년 인생에서 나는 세속적 즐거움을 하나도 모르고 살았다. 전쟁터, 지하 감옥, 교도소에서 내 모든 인생을 보냈다. 몇 달 동안 대화가 금지되기도 하고 전범 재판소에서 범죄자로 취급되기도 했다. 나를 핍박했던 사람, 몇 번이나 나를 추방한 사람, 조작된 혐의로 감옥에 집어넣으려 했던 사람, 내가 투옥되게 만든 사람 모두 나는 용서한다.”
신앙인으로 나는 이런 감정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며, 죽음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이나 축복 모두 같은 것으로 볼 것이다.
우리 동료들은 절망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은총과 허락 속에 이 나라, 이 나라의 미래, 모든 인류를 위한 우리의 봉사는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의 호의와 너그러움을 통해, 중상모략이나 악의에 찬 운동으로도 우리의 봉사활동을 막지 못한다. 순수한 양심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곧 이런 거짓말과 모략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길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지만 대화에 마음을 여는 영혼이 있는 한, 모든 이에게 웃음을 짓는 다정한 사람, 자신의 죄를 아는 양심적인 사람, 잘못되거나 오도된 행동을 뉘우칠 수 있는 영혼, 이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구축하려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부서진 영혼을 다시 고치고, 우리 자신을 찾아 모든 사람을 새롭게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근의 상황전개와 관련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한편, 터키의 여러 영역에서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불장난과 같다. 부모가 식구들간에 다른 이념을 가졌다고 싸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같은 뿌리를 가진 대가족이다. 다른 이념과 다양한 정체성을 분란이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없다. 대다수의 의견이 존중돼야 하지만 소수 집단의 의견도 같이 존중돼야 한다. 대중을 억압하면 사회의 단층면에 마찰이 생긴다. 이는 아주 위험한 것으로 어떤 정당도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상황이 게지공원 사태 중 발생했다. 시위자들은 민주적으로 의견을 나타냈으며 당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위여서, 용인돼야 했다. 관리들이 시위 현장을 방문,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했다. 그 대신 시위는 난폭하게 진압되었다. 거기에 세워질 쇼핑센터가 피한방울이라도 흘릴 가치가 있는가? 한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중요하단 말인가? 당연히 시위는 폭력으로 변했고, 지역적인 문제가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 되었다. 혼란 조장의 기회를 노려왔던 사악한 조직들이 현장에 개입하였다. 우리는 시위 당시 많은 우려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세계에 있는 우리의 동료들은 평화를 기도하고 궁핍한 자의 기도문을 낭송했다. 그런데 이 시위를 히즈멧 운동이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나님이 올바르게 알려주시기를.
일부 집단에서 히즈멧 운동의 이미지를 손상하고 운동이 외부 동인에 의해 지원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최근 “최고의 배후조정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모함은 중대한 죄악이다. 국민들이 과거에 이처럼 커다란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대중에 알려야 하며, 안 그러면 무슬림을 폄하하는 것이다. 중상모략은 정도가 지나쳐, 매일 새로운 거짓말, 모략이 나오고 있다. 부귀영화 욕구는 가슴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적절히 생각하고 느낄 수 없게 된다. 정신성을 무시하고, 이를 모욕하기도 한다. 마음이 무감각해지고 부귀영화의 욕구를 중시하면, 이런 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죄악을 저지르는 일에 무감각해진다. 성 꾸란은 감성과 따뜻한 가슴을 권한다. 차가운 가슴이 영혼을 지배하면 사람은 목적이 정당하든 아니든 이를 달성하려고 모든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불행히도 최근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가슴이 차가워졌다는 점이다. 당국이 히즈메트 운동의 배후조정자를 진정 찾고자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화합과 형제애에 주는 결속과 보호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히즈멧 운동은 사라지게 되어 있는 어떤 한시적인 동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었으며, 그가 우리를 보호하는 한 누구도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무슬림은 조심스럽게 행동토록 요구되며,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형제자매를 험담하지 않는다. 항상 세속적 소유 욕구를 나타내는 사람에게 후세는 없다. 이런 욕구로 사람은 사회적으로 이탈하며 종교적으로 왜곡의 길로 접어든다. 최근 종교적 신념과는 상치되는 비정상적인 말들이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언론기관이 이를 다양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적 규범과 상치되며 침묵을 지켜야 할 사람도 말을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매일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무질서와 부패에서 구할 수 있다. =이론적 이슬람이 생활화되면 가슴은 차가워지며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항상 무슬림을 비방한다. 사태는 결국 진정되어, 이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다시 쳐다 볼 때가 오지 않겠는가. 기도 중 메카 쪽으로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는 사람이라면 장래에 부끄럽게 느낄 험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 내일 발간되는 본 시리즈의 마지막 5번째 기사에서 귤렌은 다가오는 선거에 대한 그의 입장을 표명하며,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신 헌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쿠르드인’ 권리는 흥정 카드로 사용되면 안 된다 평화 정책과 현 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이 문제는 내가 종전에 여러 기회에 걸쳐 언급한 사안이다. 신앙인은 항상 평화를 갈구하며 평화에 필요한 자세를 견지한다. 오랜 기간 동안 문제가 누적되어 왔으며 과거에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폭력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악화시킬 뿐이다. 이제 평화와 화해의 절차가 있으며, 이 것이 방해되면 안 된다. 이 과정은 양측이 과거의 적대감을 청산하고 잘못된 것을 바꾸는 좋은 기회이다.
국가는 국민을 대우하는데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며 기본권과 자유를 흥정 카드로 생각하거나 이용하면 안 된다.
평화 협상 과정(터키 정부와 쿠르드 간의 협상 과정) 시작 이전에 이미 나는 모국어 교육에 대한 나의 관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에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으며 아직 보류되고 있다. 쿠르드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당장 양성해야 하며, 이는 대중의 요구로 시작될 사안이 아니다. 우선 정부가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호의를 베풀어 행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말이나 태도,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 지역은 수많은 주요 문명과 지식인의 고향이다. 쿠르드 국민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터키는 다른 지역에 있는 쿠르드인에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한다. 이를 통해 그들과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관계를 재설정하고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100년 전 베디우즈 자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무지, 빈곤, 분열을 지칭한다. 이런 문제로 절망, 기만, 모함, 상호불신 등이 조장되어 왔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으며, 오만이나 무시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화해 성취를 위해서는 전체를 포함하며, 또한 지역과 다양한 집단의 존재를 포용해야 한다. 누구도 거기에서 제외되지 말아야 한다. 이 지역의 사람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토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속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 이 문제는 미궁에 빠질 수 있다. 자, 이제 유혈 방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여기에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겠지만 그 이상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터키인, 쿠르드인, 수니파, 알레위파, 아랍인, 시리아인, 등등 모든 사람이 같은 가족의 일원으로 행복과 번영 속에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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