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르네상스
말 한마디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말은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다.
위의 말은 종교와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 유누스 엠레가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어쨌든 대화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며, 정보화 시대의 전제조건이다.
기자 작가 재단이 주최한 국가 화합 수상식에서, 우리가 국가적, 사회적으로 대화에 얼마나 목마른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균열은 대화 창구가 막힌 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인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일로 건강이 악화되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서 대화는 우리의 헌법이 돼야 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과학지식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 일초도 안 걸리는 현 시대에서 우리는 옛날의 패러다임으로는 살 수 없다. 눈과 귀를 열어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왜곡은 최소로 줄이면서 이해해야 한다. 더 중요한 점으로 외부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 대화를 하면서, 그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세계 편협성 지수에서 좋은 점수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 지수의 “이웃에 대한 편협성” 항목에서 나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웃에 대한 설명 항목은 “아픈 사람들, 마약에 중독된 사람, 다른 종교, 다른 종파의 사람, 투옥 선고를 받은 사람, 다른 이념의 사람”으로 나타나며 그런 다음 “그런 사람들을 얼마만큼 용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른다.
편협성 지수를 100에서 빼면, 관용 지수가 나온다. 이와 같이 계산된 터키의 관용 지수는 10% 미만으로 우리는 편협성의 정상을 점하고 있다.
편협성 지수와 물가상승률 간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것은 관용 지수와 지식 지수간의 상관관계로, 10% 미만의 관용 지수 숫자는 지식 지수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관용, 대화, 사회적 화합… 지금 이런 요소를 우리의 삶에 포함할 때가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제 화해의 밤에서 수상한 네왈 세윈디가 제시했다. 수상 연설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턱에 기다리면서 우리는 서구의 계몽시대의 그늘에 살아왔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놓쳤지만,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터키 르네상스의 원동력은 지식이다. 지식은 우리 경제의 운명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가 지구촌의 주인이 되게 할 수 있다. 소통 화합을 가져다 주고, 화합은 성공을 이뤄준다. 나는 터키의 르네상스뿐 아니라 터키가 정보화 시대의 주역이 되는 것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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