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이제 우리는 문제들을 이데올로기적인 접근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그만 두어야만 하는 때에 직면해 있다. 이데올로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잘못 된 것이다. 터키는 더 이상 화합하지 않을 사치를 부려서는 안되며,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무시할 권리가 없다.
관용과 이해는 상대방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으로 관용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통합과 그 평화를 전체주의와 같이 봐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톡타므시 아테쉬와 압두라흐만 딜리팍이 같은 상을 수상한 것이나, 수상식에서 아테쉬와 페툴라 귤렌이 악수를 한 것은 내 생각에는 하나의 ‘진보’이다. 이 진보를 야기한 이들을 격려해야 한다.
일간지 줌후리예트는 자기 신문사의 칼럼니스트가 수상했음에도 이 수상식을 무시했다. 그들의 선택이고 이것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후에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들이 사설에서 톡타므시 아테쉬를 비난하였다. 그는 이런 공세에 맞서 자신의 진심을 밝혔지만, 결국 끝이 없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한다. 진심이 이해되지 못하는 그 불편함이 그의 칼럼에 고스란히 나왔고, 그와의 대화에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이렇게 편협하게 몰고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톡타므시는 이를 정신적 문제의 일종으로 요약하였다.
신문사의 25-30명이 그를 비난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신문사에 수 백 명이 있다. 나를 비판하는 독자도 있었지만 나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낸 수 백의 독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에게 비판이 있더라도 서슴없이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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