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툴라 귤렌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만남
20세기에 산업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변했다. 이제 통신부문의 거대한 발전으로 모든 사람은 서로 가까워 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사상은 쉽게 잊혀진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그 사상이 강력하고 영향력을 갖도록 사람이 “볼” 수 있는 “창문”에 놓여져야 한다.
무슬림은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에서 서구에 한참 뒤지고 있으며, 무슬림이 물리력을 사용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신이 계시한 종교는 계속 존속할 것이다. 서로를 없앨 수 없으며, 이런 사실은 그 추종자는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더욱이 세계의 새로운 발전과 변화에 따라 종교는 협력하여 반종교 운동에 대처해야 한다.
서구의 기독교는 1962-65년 사이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화의 발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꾸란이 이미 14세기 전에 대화를 보편적, 종교적으로 요한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은 그런 대화에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이슬람을 적대시했고 필요하면 무력에 호소하여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슬람의 이미지를 왜곡함으로써 유지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서구세계의 눈에 이슬람은 몽매하고, 광신적이며, 유대교와 기독교를 교묘하게 합성, 위조한 종교로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예언자는 사기꾼으로 생각된 것이다. 기독교 세계의 변화를 보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화가 되는 제안을 공표한다. 공의회의 개막 연설에서 교황 파울루스 6세는 다른 종교에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은 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그 선한 본질을 평가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바티칸의 대화 요청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슬림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 이슬람에는 무슬림을 대표하는 공식직책이나 기관이 있지 않다.
- 몇 세기 동안 지속하면서 기독교의 지원을 받은 서구의 식민주의를 생각하면서 무슬림은 그 배후에는 바티칸의 숨은 정치적인 동기가 있을 것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다.
- 무슬림은 십자군 전쟁을 잊지 않고 있어, 서구를 경계한다.
- 무슬림은 이런 제안을 다른 선교활동이라 볼 수 있다.
이 시점에 무슬림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편 교회는 대화를 추구하고 그 잠재적 결과에 대한 대응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동양학자 덕분에 미리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터키의 무슬림은 오랫동안 바티칸의 대화요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위에 설명한 이유 때문이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터키는 국경을 넘는 그런 전개상황에 문이 닫혀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터키인이 서구세계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 그런 무관심은 수긍하기 어렵다. 둘째, 약 4백만명의 터키인이 유럽에 살고 있으며, 터키는 오랫동안 유럽연합 가입을 추구해 왔다. 또한 서구는 이슬람과 무슬림의 국제적 이미지를 터키와 다른 무슬림 국가에 나쁘게 조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진정한 이슬람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편견 없는 일반 비 무슬림의 오해를 방지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터키 그리고 무슬림 터키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페툴라 귤렌의 교황과의 만남
잘 알려진 종교학자인 페툴라 귤렌은 분열로 얼룩진 터키 내에서 진지한 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좌나 우의 극소수의 급진파를 제외하면, 다른 체제의 상호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대화 요청은 거의 모든 사회영역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받아왔다. 그의 제안과 노력이 터키 밖에서 많은 관심을 끈 이후, 귤렌은 지난 여름 미국에서 중요한 회합을 조직하고 참석했다.
많은 추종자를 가진 터키의 무슬림 학자로서 그는 주요 인사에 속한다. 특히 교육 부문 등 다른 부문에서의 추종자들의 활동은 넓은 지역에 긍하고 있다. 터키 내의 거의 모든 공동체가 그의 대화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터키 정교회 주교, 터키 아르메니아 교회 주교, 터키 유대교 랍비장 등 종교계 대표들이 포함된다. 이런 사실로 교황이 그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페툴라 귤렌의 제안
외국어에 대한 일반적인 생소함 등으로 무슬림 터키인은 한 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다. 유럽의 수세기에 걸친 공격에 의한 오스만 제국의 파괴,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의 터키 점령 등의 역사에서 터키 무슬림은 기독교 서구사회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럼으로 바티칸의 대화요청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이 만남에 대한 일부 과격파의 반응을 보면, 십자군 전쟁은 그런 모임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수이지만 다른 과격파에 의하면, 무슬림 종교 지도자는 비 무슬림을 이슬람으로 개종을 위한 목적으로만 만나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귤렌의 교황과의 만남을 반대하는 이유는 쉽게 이해가 간다.
귤렌은 그와 교황이 안티오크, 에베소, 예루살렘 등의 역사적 성지를 함께 방문하고 세계의 여러 대도시에서 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를 가르치는 대학이나 신학대학을 우르파에 개교할 수 있으며, 예루살렘을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교도에게 무 비자로 방문토록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제안은 이런 종교의 신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높여주는 중요한 제안이다. 자기의 신앙을 확신하며 이상에 헌신하며 위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인 귤렌에게 다른 종교 신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고 이슬람이 약화될 것이라는 것은 기우인 것이다. 과거의 적대감은 대화의 방해물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그는 가지고 있다.
반종교 운동에 대한 협력
무슬림은 물질 면에서는 기독교인보다 약하다. 하지만 신앙을 확신하며, 세계에 기여할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문제의 대부분은 유물론적 세계관과 종교가 표방하는 도덕가치에 대한 무관심에 기인한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대부분 부패한 물질문명의 덫에 걸린 모든 사람에게 정신성과 도덕가치를 부여하여, 절망하는 영혼에 새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올리비에 라콤, 미셸 르롱, 몽고메리 와트 등 서구의 편견 없는 사상가들이 희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진 서구세계는 무슬림의 신앙의 힘과 하느님에의 복종을 봄으로써 종교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이 학자들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대화를 통해 이슬람의 종교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을까? 이슬람을 경쟁자나 우월의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념적, 정치적 무기로 보지 않는다면, 또한 이름뿐인 무슬림이 아니라면 이슬람적 가치를 수용하고 고양시키는 일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대화에 대한 그리피스 교수의 견해
지난 여름 미국 방문 중, 페툴라 귤렌은 워싱턴 가톨릭 대학 교수인 시드니 그리피스를 만났다. 그 후 터키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리피스 교수는 대화는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구의 많은 역사학자는 십자군 전쟁을 모르고 있는 것 일까? 서구에서 이슬람은 정치학 학부에서만 교육된다. 이슬람은 동양학자의 입장에서 정치 현상으로만 받아지며 종교로서 가르쳐 지지 않았다. 여기에 주요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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