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렌의 주요 사상

이슬람과 서양과의 가교 역할

귤렌 가르침의 주요 초점은 이슬람 세계와 서양 사이에 가교를 만드는 것으로, 이와 함께 현재 무슬림 사회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도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터키 사람이 오스만 제국 시절 몇 세기 동안 세계에서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심 역할을 해온 것처럼, 이제 터키는 관용, 대화, 과학, 교육에 중점을 두어, 무슬림 세계를 20세기와 21세기로 이끌 때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귤렌은 꾸란과 사도 무함마드의 전통 (수나)에 바탕을 둔 단 하나의 정통 이슬람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현대에는 이슬람이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1]

귤렌은 이슬람의 진보적 개념을 옹호하여, 무슬림과 무슬림 국가가 최고 수준의 과학, 교육, 철학, 사회과학, 기술로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7세기 출현후, 이슬람은 다른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 교류하여 왔지만 19세기말 치열한 세계 열강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결과 낙후되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현대 세계에서 영광스런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 귤렌은 자주 사람들에게 오스만의 유산을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칼리프 제도의 부활을 원하는 것은 아니며 오스만의 주요 문화적 가치와 관습을 강조한다. 즉, (l) 대화 정신 (2) 오스만 제국은 다국어, 다민족, 다종교로 구성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3) 여성에 대한 존경 (4) 19세기에 시작된 오스만 사회와 서구와의 지적, 문화적 화해를 말한다.[2]

귤렌은 이런 오스만 모델을 무슬림 세계가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되돌아가 서구와 생산적 관계를 설정하는 기초로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동양과 서양간의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와 민주적 통치방식에 의해, 터키가 동양과 서양간의 간극을 메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귤렌은 현 무슬림 세계가 여러 가지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는 많은 무슬림 국가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진정한 과학적 사고자세가 없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무슬림 세계와 서구 간에 진정한 대화의 부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3] 그는 근대사의 많은 기간 동안 많은 국가들이 서양의 패권 아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한편, 귤렌은 이제 무슬림 세계가 이슬람의 긍정적 측면을 서구에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 한가지 방법은 세계화에 동참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생각하며 고등교육을 받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 세대를 말하는 “황금 세대”의[4] 구축을 주창한다. 이 신세대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몇 가지 외국어를 배우며, 다른 교육 환경에서도 자연과학,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어디에 있던 간에 종교간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세대이다.

교육

귤렌에 의하면 현 세계의 주요 문제는 지식의 결핍으로, 이에는 지식 창출, 관리 및 기존 지식의 취득이 포함된다. 지식의 창출, 유지, 전파는 정치나 힘이 아니라 양질의 교육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그에게 교육은 각 사회에서 생산적이며 기여하는 인간 양성에 대한 해법이 된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도 교육 없이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귤렌은 교육을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존재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어, 교육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의 주요 의무와 목적은 지성의 탐구로, 그런 노력인 교육은 우리가 우리 존재의 영적, 지적, 물리적 영역에서 하나님이 계획한 완벽한 피조물의 위치로 도달하는 과정이다.[5]

그는 교육의 세 가지 교육 형태가 (과학, 인문학, 종교) 상호 보완하며 이끌고, 완전한 인간 형성을 위해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Aslandogan, Cetin 2006). 그는 일반 과학에 대한 건전한 교육과 함께 윤리적 가치의 주입을 주창한다.

그는 교육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근대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보면서, 개인은 건전한 교육을 받아야만 민주적 법과 인권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 정의와 평화는 투철한 도덕 가치와 이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적으로 개화된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고 말한다. 귤렌과 그의 생각에 매료된 사람들은 젊은 세대에게 현대적 지식과 이슬람의 도덕을 함께 가르치기를 희망한다. 이런 철학이 귤렌 이상에서 출발한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교 등 모든 학교에 바탕이 되는 사상이다.

세계적으로 교육, 과학, 종교간 부문에서의 참여를 주창하지만, 그것이 서구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귤렌은 말한다. 서구 문명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에서 과학과 기술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서구의 세계관은 유물론적이고, 인간의 다른 영역 특히 영적 부문에 취약하다고 생각한다.[6] 특히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많은 사람이 종교를 과학의 목표에서 분리하여, 종교를 시대에서 벗어난, 과학적 탐구의 위협으로 생각하여 왔다. 종교와 과학은 함께 가는 것이며, 종교가 윤리적, 지적, 사회적 영역에서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귤렌의 관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있으며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신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은 세속적인 배움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전체적이며 건전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최선의 지식을 통해 학생은 외부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내부의 경험과 연결시킬 수 있다.[7] 그는 또한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거부하며, 이성을 사용하여 우주를 탐구,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한다. 이에 따라 종교와 이성을 어떤 것이라도 폄하하는 대신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 메드레세 (종교 학교)와 타크야스 (takyas, 전통적 이슬람 교육기관)에 대해 귤렌이 비판하고 있는 점은 그들이 현대 생활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그 학교에서 과학과 기술을 기존의 교육과정에 통합하지 못하여, 학생들이 현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과 도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일반 학교를 비판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그 학교들이 과학과 기술을 가르칠 충분한 시설은 갖추고 있지만 학생에게 정신적 윤리적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는 과학 지식과 윤리적 가치관을 통합하는 교육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8]

그는 과학 지식과 이슬람 교육이 양립할 수 있으며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는 전통적 이슬람 기관에서 교육 받았지만, 그는 청중에게 전통적 메드레세 보다는 현대식 학교의 개설을 촉구했으며 모스크 보다 학교 개설을 권고했다. 젊은 세대의 교육을 학교의 정식 교육과정을 통해서 보다는 일상적인 출판물, 설교 및 가정 교육을 통해 이슬람 지식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9]

귤렌 운동에 의해 설립되는 학교는 정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귤렌은 여러 정당의 지도자로부터 지원해주겠다는 권유를 받았지만, 항상 비당파적 입장을 견지했으며, 지지자들에게 정치에 직접 관여되는 것을 피하도록 강하게 요구한다. 터키는 이미 여러 형태의 분열을 겪고 있어, 교육은 정치적 야망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화합의 장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10]

나눔과 봉사 정신에 의한 봉사활동의 자금조달

귤렌이 구상한 교육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는 인적자원과 재원이 필요하다. 우선, 양질의 교육에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의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된 교사와 교장이 필요했다. 부모들은 공동의 교육 목표를 위해, 교사와 학교 관리자와 기꺼이 협조했으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선 트러스트의 설립을 통한 인도적 차원의 나눔이 필요했다. 이런 배경하에서 귤렌은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터키의 모든 사회계층 사람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는 터키 전역의 카페, 모스크와 작은 마을, 읍, 도시의 가정을 방문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말하던 그의 메시지는 같았다. 최고 수준의 학교에서의 건전한 교육과 이를 위한 헌신적 봉사와 재정지원이라는 메시지이다.[11]

그는 끊임없이 사회 엘리트 계층, 부유한 기업가, 중소기업 사업가 모두에게 양질의 교육을 지원토록 촉구했다. 이런 사람들로부터의 기부로, 터키 내외의 수백 개 학교를 지원할 교육 트러스트가 설립된다.

설교와 호소를 통해 그는 여러 종교의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념과 가치관인 의무, 도덕적 책무, 사심 없는 기부, 이타적 봉사를 강조했다.[12] 세윈디 (Sevindi)가 보여주는 것처럼, 귤렌은 진심으로 자유 기업 체제를 신봉하고 장려했던 것으로[13], 신앙인은 돈이 있어야 하며 특히 그가 향후 세계의 경제 흐름으로 파악한 바와 같이, 세계적으로 사업을 가능한 한 최대로 키워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런 후 축적된 부의 일부는 무지, 빈곤, 부도덕성을 퇴치할 많은 교육사업 지원에 사용돼야 한다. 귤렌은 경제적 부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유 시장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슬림과 터키 국가를 도와줄 현대적 교육제도를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14]

1980년대 오잘 대통령 치하에서 터키가 경제적으로 자유화되면서 새로운 사업가 계층이 탄생하여 터키와 해외의 사업과 자본 투자로 부를 축적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귤렌의 기업가 정신과 부의 축적이라는 견해에 이끌렸다. 또한 터키의 젊은이의 교육 향상에 이바지할 양질의 교육 제공을 위해 봉사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종교적 책임에 공감한 것이다. 귤렌 학교에서 일반 과목에 대한 교육을 통해 도덕 교육이 이뤄지고, 또한 강한 터키-무슬림의 정체성이 형성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귤렌은 새로운 사업가 계층이 첫 단계로 학생들이 머물면서 헌신적인 교사의 지도아래 함께 공부할 기숙사 건립을 후원토록 장려했다. 그 다음이 학생의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준비과정 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었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의 기존 교육제도 내에서 설립된 일반 사립학교의 재정지원이었다.

터키의 최신식 학교 건립에 누구나 할 역할이 있다고 귤렌은 설교했다. 자격이 있으며 그런 동기를 가진 사람은 학교의 교사나 관리자가 되도록 하였으며, 사업주나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교육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도록 장려하였다. 터키와 해외의 신앙인들은 그 자신들 뿐 아니라 보람된 봉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15] 사업가는 자원과 에너지를 학생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자선 트러스트에 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많은 사업가에게 학교 건립은 전 시대의 모스크 건립과 같은 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16]

그 자신은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그의 금욕주의, 이타적 목표는 교사, 부모, 후원자를 감동시켜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동선에 기여하게 된다. 사람들이 돈을 기부토록 고취시키는 것과는 별도로 귤렌은 관련 기관의 재무관리와는 거리를 두고, 기관의 후원자들 스스로 자금 사용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이 점이 귤렌의 정직성과 진실성에 커다란 신뢰를 형성케 하였다.[17]

귤렌은 무함마드 이후 4대 칼리프인 알리의 말을 자주 언급한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자매이다. 무슬림은 종교에서의 형제자매이며, 비무슬림은 인간으로서의 형제자매이다… 인간은 피조물 중 가장 고결한 존재로,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은 이 고결한 피조물에 봉사해야 한다.”[18] 귤렌에게는 이타적 봉사와 자선 트러스트를 통한 훌륭한 교육 제공은 동료 인간에게 존경심을 보이는 가장 고결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소득의 일부만 봉사 목적에 기부하더라도 이는 훌륭한 하나님 봉사 활동이 되는 것으로, 교육사업과 교육 지원은 고결한 이슬람의 가치와 결부되어 있다.

5장 “터키 -이슬람 나눔의 문화”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귤렌의 봉사 사상은 터키 문화에 깊이 내재된 박애주의 정신, 이타주의, 자비심을 일깨워, 정부 정책으로 생긴 간격을 메워주었다. 그는 종교, 과학, 세속주의, 사회적/교육적 봉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는 터키와 모든 인류에게 더욱 관용적이며 이타적인 개인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너그럽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로운 사고를 존중하고, 과학과 과학적 연구에 개방적이며,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과 인간의 삶 간의 조화를 깨달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종교간, 문화간 대화

귤렌은 종교간, 문화간 대화를 강조하면서 자주 오스만 제국에 있었던 조화로운 종교간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국은 무슬림 뿐아니라 많은 기독교인, 유태인, 일부 조로아스터 교도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근대 민족 국가 출현시까지 이 종교 집단은 전 오스만 제국 시대를 통해 평화롭게 공존하였다. 이런 평화로운 공존은 종교간 관용 사상을 주창한 많은 수피즘 스승에 의해 고취된 것으로[19], 귤렌 자신도 이들 스승에 대해 많이 공부했으며, 귤렌의 종교간 대화 주장은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동정과 사랑의 개념은 귤렌 가르침의 중심 개념이다. 그는 관용과 용서가 겸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핵심 이슬람 가치라고 항상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우월성을 믿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대화에 임할 수 없다고 가르치며, 오히려 겸손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개방적으로 유익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귤렌은 1998년 2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접견 시 자신의 겸손함을 보여주었다. 접견 후, 일단의 청년 이슬람 교도가 굴욕적으로 직접 로마 교황청에 가서 교황을 접견할 필요가 있었냐는 불만에, 귤렌은 겸손이 무슬림의 속성이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이슬람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겸손은 진정한 대화에 꼭 필요하며, 사람은 우월감을 갖지 말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20]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인종, 국가, 종교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는 예언자의 말 ‘아랍인이나 비아랍인이 우월한 것이 아니며, 또한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를 인용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인간에 같은 가치를 부여하며, 인간을 하나님의 종이라 부르고 있다.

무슬림이 이슬람을 정치 영역으로 이념화하지 말 것을 그는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념이 사람들을 통합시키기 보다는 분열시킨다고 말한다. 그는 이슬람을 하나의 종교로서 보며 당파, 민족이나 사람간의 증오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21] 귤렌은 터키의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의 신념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1980년대 말, 그리스 정교회 주교인 바르톨로뮤와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터키 정치인들이 자주 비판해왔던 터키내 그리스인의 입장을 강화시키려 노력했다.[22] 그는 또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의 수도 에레반에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했다.[23]

위와 같은 그의 행동은 종교간 대화와 함께 그의 문화간 대화와 교육적 발전에 대한 그의 강한 신념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진행하는 행동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으로, 터키로 한정되면 안 된다.”[24] 이런 권고에 따라 터키의 사업가와 교육자들은 터키를 넘어 해외로 학교와 병원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종교간 대화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의 필수품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현 세계의 다원성은 지속될 것이며, 세계가 글로벌화 되면서 점차 심대한 도전이 따를 것이라고 그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서로 다른 신념, 인종, 관습, 전통은 이 지구촌에 계속 함께 존재할 것이다. 각 개인은 그런 이질적 요소에 그 나름대로 대응함으로, 모든 인간이 비슷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지구촌의 평화는 이런 차이를 존중하고, 차이가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사람들이 이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불가피하게 갈등, 분쟁, 싸움,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져 종말의 길로 접어 들게 된다.[25]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기독교, 유태교는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근본은 거의 비슷하고, 같은 근원에서 자라난다. 오랫동안 경쟁적 종교로 살아 왔지만, 그들간의 공통점과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게 행복한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공동의 책임을 고려하면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대화가 이제 아시아와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26]

공식적인 설교와 교직 생활 은퇴후, 귤렌은 활동의 많은 부분은 터키와 세계의 다양한 문화, 종교 및 소수민족 집단간의 대화에 역점을 두었다. 이런 활동은 그의 방문이나 여러 집단으로부터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가 살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간헐적인 방문을 통해 또는, 홈페이지, 귤렌의 자만지에의 정기적인 기고, 다른 많은 보도 매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귤렌은 그의 청중과 독자로부터 커다란 존경과 사랑을 나타나는 애칭인 호자에펜디 (존경하는 스승)로 불리고 있다.

이슬람은 테러를 행하거나, 용인하면 안 된다

2001년 9월 12일, 귤렌은 뉴욕 타임스의 한 페이지 전체를 빌어 그 전날의 테러리스트 공격을 비난하고, 테러는 예언자의 가르침과 이슬람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9월 21일, 다시 귤렌은 워싱턴 포스트에 다음과 같이 그의 의견을 피력한다.

우리는 최근 테러리스트의 미국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며, 미국민의 고통을 우리 마음속 깊이 함께 한다. 이슬람은 테러 행위를 혐오한다. ‘한 사람을 부당하게 살해하는 것은 전 인류를 살해하는 것과 같다’고 믿는 종교에서 수천 명의 인명을 뺏어가는 지각 없는 살상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희생자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향하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자 한다.

후속 기고문에서, 그는 이슬람은 어떤 형태의 테러도 용납하지 않으며, 친이슬람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슬람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귤렌은 지지자들이 9/11 이후 계속 사용한 말을 인용했다.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 될 수 없으며, 진정한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없다.”

그는 또한 미국인들에게 소수의 잘못된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여러 무고한 사람을 손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복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런 보복 행위는 기존의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더 많은 테러리스트와 폭력을 야기해 테러만 강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27]

귤렌은 또한 자신의 이해와 권력 유지를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는 무슬림 지도자를 비판하고 있다. 일부 종교 지도자와 “미숙한 무슬림”이 의도적으로 이슬람을 극단적 원리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무고한 사람을 자기들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슬람에서 목적이 합당해야 하듯이 달성을 위한 수단도 합당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대로 알면서 테러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귤렌은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정신세계를 상실했고, 일부 지도자들이 이런 점을 이용하여 젊은이들을 테러 활동에 가담시켜,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귤렌은 이 지도자들이 약물을 사용, 젊은이의 생각과 충성을 조작하기도 한다는 말까지 했다.[28] 이런 행위에 대처하는 주요 방법이 바로 양질의 교육의 제공인 것이다.

귤렌의 사고 틀에서 교육은 테러에 가장 강력한 직접적 처방이 된다. 종교의 기본원칙은 정치적, 이념적 행동, 또한 잔인한 테러 행위를 촉발시키는 해석을 전적으로 배격한다. 이런 기본원칙을 교육제도를 통해 무슬림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테러가 파괴적이며, 비도덕적이며 인간성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이다.[29]

국가와 종교간의 관계

귤렌은 이슬람 정치체계의 수립을 주장하지 않고, 독자에게 정치에 휘말려 들지 말라고 권고하는 있는 한편, 종교가 개인 영역으로 한정되면 안되며, 공적 영역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그는 현대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한다. 그의 견해로는 국가의 종교 지배는 이슬람에 해를 끼침으로, 종교는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귤렌 운동은 일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세속국가의 합법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이슬람 운동이다.[30] 1998년, 귤렌 운동과 관련된 비영리 문화간 대화 단체인 ‘기자 작가 재단’ 은 터키의 가장 존경 받는 신학자와 이슬람 학자로 구성된 회동을 시작했다. 이 회동 결과 나온 선언문에서 “모든 믿음과 철학에 똑같은 거리를 두는” 세속국가를 수용한다고 밝히고 있다.[31]

의심의 여지 없이 귤렌은 그의 국가적 전통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터키 사람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항상 터키라는 뿌리, 터키의 오스만 역사, 터키와 뿌리가 같은 중앙아시아를 포함하는 광역 투르크 세계에 대해 언급한다. 이와 같이 그의 정체성 개념은 오스만-이슬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귤렌 공동체는 그 민족적 특성으로 고유한 방향을 발전시켜, 민족주의, 자유 시장, 교육을 강조하면서 누르시나 다른 집단과 차별화하였다. 귤렌은 시장 경제와 오스만 전통이라는 특징을 가진 터키의 “새로운” 이슬람 건설의 견인차라 할 수 있다.[32]

그의 민족주의는 포괄적이며 혈연이나 종족이 아니라 공유되는 역사적 경험과 정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귤렌 공동체는 이슬람은 국가의 종교로, 어떤 당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한정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귤렌에게 이슬람은 수행돼야 할 정치적 영역이 아니라, 공정하고 윤리적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하는 지식과 실천의 보고인 것이다.[33]

귤렌은 어떤 형태로든 국가와 대치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오히려 그의 목표는 국가를 이슬람 개념으로 회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폭력이나 마약 같은 사회악을 퇴치하는데 신앙의 힘을 활용하면서도, 사람들의 자유로운 종교활동에는 개입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있다. “나는 항상 국가와 군대를 옹호한다. 국가가 없다면, 무정부 상태와 혼란이 초래된다.”고 말한다.[34] 그는 사람들이 국가를 존중하되, 당파 정치에는 휘말리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귤렌은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그 정치체제가 글로벌 세계에서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정부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와 이슬람은 양립할 수 있다. 이슬람 법의 95%는 개인 생활과 가족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단지 5%만 국가와 관련되고 있고 이는 단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처리될 수 있다. 누가 이슬람 국가 등 다른 정체를 생각한다면, 이 나라의 역사와 사회 여건이 그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는 터키에서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다.[35]

그는 사람들이 정부를 존중하고, 반대의견은 서양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투표를 통해 나타낼 것을 주장한다.

[1] 여기 자료의 많은 부분은 Nevval Sevindi가 귤렌과 가진 1997년 인터뷰 및 그 후 2001년 9/11 사태 이후 뉴욕과 워싱턴에서 행한 인터뷰를 근거로 하고 있음. (2008)
[2] Abu-Rabi (2008)
[3] 같은 책에서
[4] Sevendi (2008)
[5] 귤렌 『사랑과 관용의 세계적 문명을 향하여』(Toward a Global Civilization of Love and Tolerance) p. 202
[6] Carroll (2007)
[7] Gülen (1998) p. 99–100
[8] Michel (2005)
[9] Kuru (2003)
[10] Aslandogan, Cetin (2006)
[11] Cetin (2010)
[12] Gülen (2005)
[13] Sevendi (2008)
[14] Yavuz (2003)
[15] Sevendi (2008)
[16] Cetin (2010)
[17] Woodhall (2005)
[18] Unal, Williams (2000)
[19] Saritoprak, Griffith (2005)
[20] Saritoprak, Griffith (2005)
[21] 같은 책에서, p. 337
[22] 1919–1922년의 그리스-터키 전쟁은 서구 연합군이 그리스에게 오스만 제국의 일부 영토 취득을 약속함으로써 발발했다. 전쟁은 그리스군과 후에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는 터키 혁명군간에 치러졌으며, 그리스의 패전으로 로잔느 조약에 따라 그리스의 영토는 종전 국경으로 환원되고 터키와 인구 교환이 이뤄졌다.
[23] 터키와 인접국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1915) 양국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면서 경직되었다. 아르메니아인은 터키가 백만 명 이상을 “집단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면 터키는 비슷한 숫자의 터키인이 죽었으며, 양쪽의 희생은 전쟁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24] 페툴라 귤렌 (1993)
[25] 귤렌 (2004) p. 249–250
[26] 귤렌 (2004) p. 23
[27] 같은 책에서, p. 262
[28] Saritoprak 귤렌과의 인터뷰, p. 466
[29] Gülen (2005)
[30] Akyol (2008)
[31] 같은 책에서
[32] Yavuz (1999)
[33] 같은 책에서
[34] 귤렌의 사바지 인터뷰, 1995년 1월 27일
[35] 같은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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