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서구의 발전을 르네상스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르네상스는 가능한지 또한 필요한 것인지 의견을 말해달라

르네상스는 새로운 탄생, 부활 또는 각성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대의 장중한 정신적 가치를 부활시키는 운동, 또는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고전을 읽고 평가하는 움직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사상 부문에서 고전작품과 전설적인 신화를 중심으로 고대의 정치적, 법적, 도덕적 가치에 이 운동의 초점이 주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르네상스가 이런 것이라면, 부분적으로 훌륭한 면도 있지만 모든 점을 수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르네상스는 쥘 미슐레와 같은 철학자의 지도로 종교적 권위의 지배에 대한 반발이었고, 자유 옹호라는 관점으로 이해된다면 개인주의의 이름아래 이뤄진 철저히 반 종교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으며 단테와 조토 디 본도네 같은 철학자나 미술가와 관련되지만, 인간에게 진정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없고 그런 관점으로는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유는 서구의 혼란스러운 사고체계로 혼란에 빠진 일부 사상가는 극단의 인본주의를 종교로 받아들여 사고에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슬람은 3-4세기에 이미 르네상스를 이뤄 어느 면에서 서구 르네상스의 틀을 제공했다. 상실된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인간과 보편적 인간의 도덕성이 조화되는 그런 르네상스를 우리는 진심으로 갈구한다. 또한 독재체제가 의문시되며 독재자에 종말을 고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향하는 르네상스를 지지한다. 미술 부문에 커다란 발전을 도모하며, 오랫동안 잊혀진 우주의 책을 읽도록 장려하는 그런 르네상스를 성원한다. 연구에 대한 탐닉, 지식에 대한 열정을 장려하고, 또한 우리의 세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종교를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하는 르네상스를 우리는 갈구한다.

우리는 이성, 마음, 정신, 가슴의 각성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직 노력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만사에는 때가 있어,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는, 그렇게 어두운 밤에서 무엇이 나올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무슬림 세계, 특집호, 2005년 7월, 95권 3호, 325-471쪽]